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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으면 좋은 얘길 해주는구나" 과거를 뒤로 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뮤지컬 2024. 1. 22. 23:44

    대학로에서는 수많은 2인극이 있죠. 그 중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이야기,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입니다. 이름이 길어서 줄여서 '솜'으로 부르겠습니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캐스팅

     

    영화 <It's a wonderful life>에 나오는 천사 클라렌스 복장을 하고 나타난 토마스와 헤어 롤을 돌돌 말아 올린 채 죽은 엄마의 가운을 걸친 앨빈. 그들은 그렇게 7살 할로윈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아버지의 서점을 물려받아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는 앨빈과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토마스. 대학 원서를 쓰다 글 문이 막혀버린 그는 앨빈에게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앨빈은 토마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토마스는 앨빈의 조언에 마법처럼 글이 써진다.

    대학에 입학한 토마스는 점점 세상에 물들어간다. 어린 티를 벗고 약혼한 애인도 있다. 하지만 앨빈은 사는 곳도, 하는 일도, 그리고 사차원적인 행동도 모두 어린 시절 그대로이다. 토마스에게 그런 앨빈은 더 이상 소중하지 않았고 점점 둘은 멀어져 간다. 토마스는 대학 졸업 뒤 많은 책들을 내고 세상에서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깨닫지 못했다. 그가 쓴 모든 글의 영감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 앨빈에게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Yes24티켓

    시놉시스

    어릴 때 친했던 친구가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갈등을 겪게 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그런 스토리라고 요약할 수 있죠.

    아직까지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쓰는 앨빈과 어린 날을 벗어나 어른의 삶을 계속 써나가는 토마스(이하 톰). 책이 꽤 빠르게 베스트셀러가 된 유명 작가인 톰, 그리고 시골 구석에서 아버지의 책방을 이어나가 고객에게 그들만의 평생의 짝꿍을 찾아주는 앨빈이기에, 조금 더 그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연강홀 1층 솜 캐스팅보드

     

    이런 관계성에 따른 이야기들은 대학로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타성에 젖어있는 슬럼프에 빠진 시인 베를렌느와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면서도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랭보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랭보>, 가정폭력의 피해자이자 소년 가장인 데클란과 그의 삶을 훔쳐 작품을 써 성공한 슬럼프에 빠져있던 극작가 리비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마우스피스>가 바로 그런 것이겠죠.

    하지만 위 두 극과 다른 점이라면 이것일겁니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이 어느 계기로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의 전반을 다루는 앞의 두 극과는 다르게, 솜은 과거에서 그 이야기를 찾습니다. 과거에는 너무나 친했지만, 이제는 서로 달라지고 어긋나버린 관계가 되었지만, 그 과거에 머물러있던 친구 앨빈이 죽게되면서 토마스는 해결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이야기가 바로 이 극의 전반적인 이야기죠.

    정욱진 이창용

    좋아하는 영화의 천사처럼 다리 위에서 떨어진 앨빈의 장례식, 토마스는 송덕문을 작성해야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와 함께 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계속 짚어봅니다. 그의 죽음에 나의 책임이 있나를 찾는 것도 그의 목적이 담겨있죠.

    <마우스피스>의 리비가 그랬던 것처럼,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토마스 역시 이야기를 훔쳐 자신의 이야기처럼 속입니다. 앨빈과 함께 했던 삶의 순간을 지우고 나 혼자 성공한 것처럼 굴며 절대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과거는 계속 반복됩니다. 앨빈의 환영을 보면서, 레밍턴 선생님의 장례식에 들어가던 순간, 눈천사를 만들던 순간, 강을 바라보며 놀이를 하던 순간들 모두 톰의 기억에는 각인되고, 결국 그의 소설에까지 쓰여져 불특정의 독자들에게까지 읽힙니다.

    욱진앨빈과 창용톰

     

    사실, 저는 보면서 앨빈이 저렇게까지 과거에 매달리고, 그 과거의 기억을 '같이' 간직하고 있는 톰에게만 의지할 필요는 없었다고 봅니다. 과거에 친구가 없었고, 어머니는 죽었던 시점에서 머물러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느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에게는 아버지처럼, 서점을 찾은 고객에게 그의 인생책을 찾아주고 소개해주는 능력이 충분했고, 그걸 잘 해내고 있었으니 말이죠. 물론, 이 동네를 떠나 토마스처럼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 싶었을 수 있죠. 아버지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기 위해.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토마스의 집에 초대되어 동네를 처음으로 벗어나는 순간이 도달할 때, 마냥 설렘을 가지고 들떠있던 그는 토마스가 그 약속을 취소하자 그저 그 동네에만 박혀있었을 뿐이죠. 토마스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 장소를 벗어날 수 있었을텐데.

    반복되는 과거의 순간에서 이별의 순간을 끄집어내며 앨빈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고민하던 톰의 심경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아니었을지라도, 일이 벌어지고 나면, 자신의 책임을 통감합니다.

     

    솜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추도문이 아닌 공덕문을 말해줍니다. 공덕을 기리어 지은 글. 즉, 당사자의 삶을 잘 아는 사람들이 써야하는 것이죠.

    과거 둘의 선생님이었던 레밍턴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몰래 숨어들어간 둘은, 송덕문을 들으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죽으면 좋은 얘기만 해주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아무리 자신과 다른 삶이었을지라도, 떠나가는 사람에 대한 좋은 이야기로, 그 이야기를 끝맺는 것이죠.

     

    극 중 토마스는, 앨빈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저 영국 최고의 문학사적 의의가 있는 자의 시구를 인용하여 송덕문을 썼습니다. 이게 다냐, 하는 말에 그는 너네 아버지에게는 너무 과분하다며, 그 송덕문의 의의를 흩뜨리죠. 그리고 앨빈은 결국 그 아버지의 삶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풀어 송덕문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는 슬럼프에 빠진 토마스에게 큰 울림을 주죠. 재능이 없어서 이 동네에 있던 게 아니었구나하는..

    과거의 스토리를 돌아보다돌아보다 지친 그는 어떻게 앨빈을 보내야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과거를 그저 묻어두고 앞만 보았기에 생긴 일이겠죠. "네 머릿속엔 수천개의 이야기가 있어. 그걸 그냥 꺼내면 되잖아."

    그 말을 듣고 자신이 붙잡고 있던 글들을 놓고 그저, 그 자신과 앨빈의 이야기를 끄집어냅니다.

     

    과거에 한 번 일어났던 일들, 순간이라 흘러갔다고 믿을 수 있겠지만, 그 모든 순간은 우리의 머릿속에 기억됩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우리의 삶의 이야기의 한 챕터로 기능하죠. 그걸 잊어버린 채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안된다는 것을 이 극은 말하고싶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앨빈은 토마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수없이 상처받았고 웅크러들었던 과거의 순간을 그저 앨빈 자신을 위해 기억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죠.

    어떻게 보면, 토마스의 이기적인 해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시작부터, 앨빈은 실제 살아있던 앨빈이 아니라 그저 토마스의 이야기의 등장인물로만 나오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묻어만두던 과거를 다시 들춰보고 그를 진심으로 기리게되며 발화하게될 수 있는 토마스의 앞날이, 결국 함께 눈속의 천사들을 만들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확실히 가사와 대사, 그리고 장면의 반복이 상당히 많이 이루어지는 극이기 때문에 한 번 보고는 그 장면의 의미를 곱씹어보기가 조금은 힘든 극이라고 생각해요. 앨빈이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 <멋진 인생> 속의 장면을 그대로 따라하며 끝을 맞이한 것은 물론, 천사 클라렌스의 눈의 천사를 만드는 장면이나 영화와 관련된 상징들이 많아, 극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애매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ㅎ 1946년의 영화와 어떤 식으로 관계가 있을지는 잘 모르지만,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가지고 간다라는 것만 가지고 보신다면, "아름다운 이야기였어"로 마무리지을 수 있는, 따뜻한 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외면하고 살아왔던 사람이 그동안 덮어두었던 것을 다시 마주하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한 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작품을 보신 분들이 토마스를 보며 자신과 비슷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만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이라고 생각해요.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낀다면, 꼭 보시기를 바라요. 당신에게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INTERVIEW] 우리가 함께한 계절_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배우 김종구·조성윤 - 시어터플러스

     

    시어터 플러스에서 진행한, 조성윤, 김종구 배우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해왔습니다.

    나를 인정하고 성장해나간다. 인정하기까지도 오래 걸리고, 이를 바꿔나가기까지도 오래 걸리는 것이 당연하죠. 이를 극에서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좋은 감정 얻고 이 겨울을 보낼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에요.

    번데기에서 나와 나비가 될 모두의 이야기를 위해.

    안녕, 나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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